오픈 미디아트이용문의 (To Council)

진리와 철학을 영상으로 표현한 오픈 미디아트 시청은 대표적인 온라인 오픈마인드 활동 (Openmind Activity) 입니다.

 

[필수추천 영상]

"오픈 얼라이언스 영상"은 모든 회원님들께 시청을 권장하는 영상이고, 
"오픈 어드바이저 영상”은 어드바이저 회원님들이 필수적으로 시청해야 하는 영상입니다.

 

[테마별 영상]

‘오픈마인드 영상’을 테마별로 구분하여 본인이 자유롭게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을 선택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업데이트 영상]

"최근 영상"에서는 주간, 월간 별 최근 새롭게 업데이트된 영상 목록을 업데이트해 드리며, 
"추천 영상"에서는 주간, 월간 업데이트된 추천 영상을 안내해 드립니다.

 

자세히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온라인 종교활동문화: 예식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고, 집단신앙활동 등 오프라인 종교활동이 아닌 온라인으로만 가능한 오픈마인드 활동(Openmind Activity)은 '온라인 영상 시청'과 '온라인 작품 관람'을 시작으로 기술의 진보와 시스템의 발전에 따라 추후 ‘오픈 그래픽 노블’ ‘진리 탐구 대화 AI Chatting Service Veritas’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도록 사전 기획,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노블 영상]  

진리 통찰과 창조 영감이 담긴 스토리를 미술과 소설이 접목된 그래픽 노블의 형태로 작품화하여 오픈아트오픈미디아트를 접할 수 있는 영상 서비스이며 시범 서비스 기간 이후 시청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얼정신과 수용

[6-1] 한얼정신과 수용

한얼정신은 열린정신의 열린신앙입니다.     열린신앙은 특정 대상을 믿고 숭배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진리를 바라보며 진리를 가르치는 대상이 아니라 불변의 진리를 믿습니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모든 성현들을 존경하면서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타적인 가르침을 실천하여 진리 아래 하나되어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길입니다.     그렇기에 타 종교의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을 존중하고 모든 종교의 창시자, 예수님, 부처님, 단군님, 노자님을 위시한 모든 성현들, 자아를 극복하고 에고를 초월한 바른님들을 하나의 의미로 존경합니다.     단군님 또한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한얼정신을 계승하고 홍익인간의 가치를 근본에 두고 진리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것은 모두가 진리의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로 인해 분리되고 대립하며 작은 갈등은 전쟁과 테러로 확산됩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믿음의 차이가 종국에는 서로를 멸하고 응징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게 되며 그것이 고통의 역사를 만듭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 인류는 거대한 진일보를 내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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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정: 진리의 길에서 만나리

[6-2] 만법귀정: 진리의 길에서 만나리

"한"은 하나이자 영원불멸한 전체를 뜻하며 "얼"은 그 안에 깃든 혼, 만물의 본질을 뜻합니다. 또한 "한얼"이라는 말은 순수 우리나라 말로 모든 신앙의 본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자 진리의 현존, 삼라만상의 바탕, 영원불멸하고 전지전능한 창조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불성이라 표현하고, 기독교에서는 하느님, 천주교에서는 주님이라 지칭하며, 이슬람에서는 알라, 힌두교에서는 브라만이라 부릅니다.     "나얼"은 나라는 에고가 생기기 전 내 의식의 본래 존재상태, 순수생명의식이자 에고를 극복할 때 다시 만나는 초월적 본성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참 나, 내 안의 신성이라 표현되기도 하며 성령, 본성, 아트만 등 여러 형태로 불리지만 한법에서는 에고를 넘어선 나얼의식, 한얼과 한'아'인 한얼심, 한얼의 위대한 가능성의 실현자인 나얼이라 칭합니다.     이름과 지칭은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우리가 성현들의 손가락을 보는 것이 아닌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한곳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식의 진일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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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빈자리

[6-3] 고요히 빈자리

눈은 겨울의 표현이지 겨울의 본질은 아닙니다. 겨울 자체는 형상이 없으나 그로 인해 모든 겨울의 형상과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사계절과 같이 자연의 이치는 형상이 없으되 그로 인해 보여지는 모든 형상들이 나투어집니다.     모든 참된 것들, 진리, 섭리, 사랑, 자비, 지혜는 형상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내 본질, 만물이 나투어지는 진리의 본체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존재하고 만물이 존재하듯 진리는 고요하고 형상이 없습니다.     한얼 법전과 성전에는 어떠한 신앙의 대상도 없습니다. 그저 고요하게 비어있는 자리만이 놓여있습니다. 빈자리는 형상을 초월한 진리의 자리이며 내 에고를 초월할 때 만나게 되는 우리의 본성인 '나얼', 'Holy Spirit', '아트만', '불성'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내가 깨달음과 깨어남을 통해 궁극적으로 앉아야 할 형상을 초월한 텅 빈 자리입니다. 그것은 결국 내얼이 한얼이니 한얼과 한'아'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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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의 힘

[6-4] 수용의 힘

수용신앙은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라는 한사상을 근본으로 민족과 국가, 인종과 종교를 모두 초월해서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각 시대, 각 환경에 따라 그 표현과 방식은 각기 달랐으나 모든 종교의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불변의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종교, 각자의 신앙방식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종국에는 진리의 자리에서 하나될 것을 희망하고 신념합니다.     불변의 진리는 결국 하나이기에 종교가 서로를 가르고 배척하고 대립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포용하고 수용하며 각자의 종교를 통해 각자의 믿음 안에서,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온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되는 새로운 시작을 함께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용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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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6-5] 희망

수천년 전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본다면 마법 또는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수천년 전과 똑같은 이유로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고 전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 후에야 온 인류는 결국 '상호 의존해야만 하는 하나'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날이 올까요?     도대체 언제쯤, 누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갈등과 대립의 고통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을 기다리는 대신,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단 하나도 없을까요?     지금 당장 정치, 국가, 종교, 이념으로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우리가 그 기적을 "희망"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모든 불가능을 극복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지는 생각하지 마세요.     어떻게는 신에게, 우주에게, 자연의 섭리에게 맡겨보세요. 우리는 어떻게에 대해 관여하지 말고 그저 믿고, 희망해 보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시작하는 작은 희망 하나가 우리의 생각과 상식을 벗어나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펼쳐져 용서와 수용의 기적 같은 인류 의식진화의 진일보를 실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누군가를 기대하고, 미래의 언젠가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다 같이 희망을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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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한얼정신

[6-6] 홍익인간 한얼정신

우리는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리라."는 홍익인간 한얼정신을 근본으로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을 기념해 왔습니다.     "개천"이란 자신 안의 하늘이 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갈등과 대립, 전쟁과 고통으로 점철된 집단 자아의식에서 깨어나 우리의 참된 본성인 나얼을 찾아서 온 인류의 화합과 상생을 실현하는 인류의식진화의 가능성을 예견한 것입니다.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한얼정신"은 종교, 이념, 인종, 국가, 젠더 등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초월해 모든 인류가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초월적 구심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본질적 차원에서 하나라는 진리를 정각하고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여 얼싸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개천", 인류 의식진화를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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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법

[6-7] 바다법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지만 그 본질은 하나이듯이 진리는 담기는 종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지만 그 본질은 하나입니다.     물이 형상을 여의었을 때 수증기처럼 모든 곳에 퍼져 있고, 응고되어 딱딱한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아서 흐르는 물이 되어 흐르듯 진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전해지고 흘러왔으나 강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되듯 진리가 흐르는 종교라면 우리는 언젠가 인류 의식진화의 바다에서 만나 하나될 것입니다.     만교일본 (萬敎一本) 모든 진리의 종교는 하나의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만법귀정 (萬法歸正) 모든 진리의 종교는 바른 진리로 만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얼의 근본종지인 만교일본 만법귀정입니다.     온 세상에 서로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이 심화될수록 포기하고 원망하는 대신 진리의 바다에서 화합과 상생으로 하나될 날을 희망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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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해방의 열쇠

[6-8] 구원과 해방의 열쇠

구원과 해방의 열쇠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습니다. 근심, 걱정, 불안, 초조, 원망, 갈등, 저주, 분노 이러한 고통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이 스스로의 구원자이자 해방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진정한 구원과 해방은 나에 맞춰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 더 정확히는 내 의식의 차원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미래가 아닌 지금에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과거는 기억이고 미래는 가능성일 뿐 현존하는 실제 시간이자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해방이며 지금이라는 의식의 시공은 한 순간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시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바로 지금, 업과 습으로 작동하는 생각의 굴레, 자아의 한계로부터 해방되어 이 삶을 통해 진정으로 실현하고 싶은 가능성을 기억해 봅시다. 바로 거기에 지혜와 자비가 자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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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열쇠

[6-9] 치유의 열쇠

수용신앙은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고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열쇠입니다.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대립, 분쟁과 투쟁을 극복하는 진정한 변화는 나와 다른 잘못된 누군가를 응징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단 하나, 바로 내 의식의 차원, 마음의 뿌리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 뿌리를 바꾸지 않는 이상 어떠한 외부적 변화도 종국에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고통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아를 가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다운로드된 집단의식의 시냅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잠재의식에 자리잡아 나 아닌 다른 존재, 나의 믿음과 다른 믿음을 적으로 간주하고 종국에는 갈등과 대립을 만들어내는 마음이라는 자아운용 소프트웨어의 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를 치유하는 치유제, 고통과 갈등의 백신은 "수용"이라는 지혜와 자비의 의식전환입니다.     자연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수용하듯 우리가 진정한 수용이라는 내면의 변화를 통해 나와 다른 삶의 형태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끔 수용하기 시작한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헛된 갈등들은 그 타성을 잃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된 수용이라는 내 자신의 생각의 변화, 내면의 전환이 온 인류에게는 더 없이 위대한 진일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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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과 한얼

[6-10] 내 얼과 한얼

"한"은 하나이자 영원불멸한 전체를 뜻합니다. "얼"은 그 안에 깃든 만물의 본질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한얼"은 우주삼라만상의 실체와 근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영원불멸의 표현인 시작도 끝도 없는 현재가 의미하는 진리의 현존과 전지전능의 표현인 무한 창조의 섭리와 영원한 진화의 원동력을 의미합니다. 즉 "한얼"이라는 말은 순수 우리나라 말로 모든 신앙의 본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나얼"은 나라는 에고가 생기기 전 내 의식의 본래 존재상태, 순수생명의식이자 에고를 극복할 때 다시 만나는 초월적 본성을 의미합니다.     "내 얼이 한얼이다."라는 의미는 내 존재와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는 같은 근원과 본질을 공유하며 내 에고를 극복하여 본성인 나얼의식으로 지혜와 자비를 실천할 때 나는 참 존재의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모든 존재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하나이며 온 인류는 하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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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과 평화

[6-11] 수용과 평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잔인한 전쟁과 테러, 살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가만히 성찰해 봅시다.     각 종교의 창시자님들은 과연 자신이 창시한 종교로 인해 서로를 멸하는 것을 용납하실까요? 종교란 투쟁과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 용서와 화합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상호 수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용서라는 위대한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나와 다른 삶의 불가피한 그러함을 수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인류집단의식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고통의 수단이 아닌 화합의 수단을 통해 자비를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참된 평화와 인류 의식진화가 자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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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열쇠

[6-12] 풍요의 열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풍요는 풍요로운 사람에게로 흐릅니다. 내 마음은 언젠가 돈을 많이 벌고 풍요로울 때 남에게 베풀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풍요로움이란 돈의 액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이며, 풍요로움을 표현하는 것은 바로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풍요로움의 표현은 단순히 물질이 아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의지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용서와 이해 같은 사랑과 자비의 생각과 행위를 모두 포함합니다.     내 곁의 사람들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기쁨과 행복, 사랑과 자비, 용서와 이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성찰하여 실천해 보십시오. 바로 그때 무한한 풍요의 기운과 조화가 여러분을 통해 실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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